파월은 금리를 올리려고 연준의장이 됐다
제롬 파월은 금리를 올리기 위해서 연준의장이 됐다. 2017년 8월 트럼프 백악관 참모진들과 차기 연준 의장과 관련한 사전 인터뷰를 끝내고 가까운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 자리였다. 파월이 월스트리트에서 인수합병 전문 변호사로 일할 때부터 알고 지난 절친들이었다. 사실 파월은 연준 의장 자리에 큰 관심이 없었다. 파월은 정통 경제학자 출신이 아니라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2017년 1월에 들어선 차기 트럼프 공화당 행정부에서 공화당원 출신 경제관료인 파월이 내심 원했던 자리는 연준 의장이 아니었다. 파월이 내심 고려한 자리는 정부 산하 은행감독기관의 부의장 자리였다. 파월은 1991년 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일하면서 뉴잉글랜드 은행 파산과 솔로몬 브라더스 파산 같은 굵직한 금융위기를 해결한 경험이 있었다. 민간 부문의 칼라일 그룹에서 은행 인수합병을 다뤄본 파월한테 은행감독기관에서의 역할은 제법 잘 어울리는 자리였다. 그래서 트럼프 참모들과의 사전 미팅에서도 파월은 자넷 옐런 현직 연준의장의 연임을 강하게 주장했던 참이었다. 파월은 진심으로 연준의장직에 관심이 없었다. 진심으로 옐런의 연임을 바랬다. 그렇지만 사전 인터뷰가 끝나자 파월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옐런을 재임명하는데 한 톨의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친구들은 파월한테 그렇다면 연준의장직을 맡아야만 한다고 조언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금리를 올릴 때가 됐기 때문이었다. 절친들이 파월한테 해준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시장이 연준을 잡아먹기 전에 연준이 시장보다 한발 앞서서 금리를 정상화시켜야만 한다네.” 솔직히 다들 알고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도 이미 10년 전 일이었다. 연준은 파티를 끝낼 때가 됐는데도 아직 펀치볼을 치우지 않고 있었다. 이러다 경제가 과열되기라도 하면 나중엔 경기침체라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수도 있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자넷 옐런 연준의장은 기준금리를 0.50%로 낮게 유지하고 있었다. 까놓고 말해서 대선이 있는 해였으니 어쩔 순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인플레이션은 다행히 낮았다. 10년 가까이 지속된 저금리에도 CPI는 1% 안팎에 불과했다. 실업률도 5% 미만이었다. 덕분에 자넷 옐런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모두 잡은 연준의장이 돼가고 있었다. 역대 모든 연준의장이 이루려던 업적이었다. 정작 이렇게 경제가 좋았는데도 2016년 11월 대선에서 민주당은 트럼프한테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민주주의의 아이러니였다.그런데 오비이락처럼 2016년 11월 대선 직후부터 인플레이션이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미국 CPI는 2017년 새해벽두 1월부터 순식간에 2%를 넘겨버렸다. 이때도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4년 뒤 2021년 4월 파월 시대에 미국 CPI가 2%대를 기록했던 것처럼 이때도 역시 인플레이션 여부를 판가름할 결정적 순간이었다. 옐런은 파월과 달랐다. 인플레이션을 있는 그대로 인플레이션으로만 바라봤다. 옐런은 즉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려서 맞대응했다. 대선이 민주당의 패배로 귀결돼서였을 수도 있다. 옐런은 더 이상 오바마 행정부를 고려해 낮은 금리를 유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옐런은 민주당원이었다. 차기 트럼프 행정부를 위해서 낮은 금리를 유지할 필요 따윈 더더욱 없었다. 어쩌면 이때 이미 옐런 연준의장도 트럼프 행정부에선 연임이 어려울거란 사실을 직감했었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옐런은 인플레이션에 정치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2021년 4월의 파월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부분이었다. 연임에 연연하지 않고 정치적으로도 독립적인 연준의장만큼 막강한 존재도 없다. 2017년 옐런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