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장의 진짜 병목은 사람… 투자액보다 중요한 ‘채용 수율’
[미국 제조업 인력전쟁 2]
경제활동참가율·통근 패턴·인력 공급… 공장 입지 선정 기준 달라져
“2시간 통근권” 숫자만 믿으면 오판… 실제 출퇴근 가능 인력 따져야
타주 감원 인력까지 채용 대상으로… 조지아, 노동시장 범위 넓혀
📌 더밀크 핵심요약
- 한국 기업의 미국 제조업 진출이 늘면서 인력 전략도 임금·통근권·채용 대상·훈련 체계까지 함께 봐야 하는 경영 과제가 됐다.
- 실업률보다 경제활동참가율과 실제 통근 패턴, 향후 인력 공급을 확인하고, 정규직 밖의 여성·은퇴 숙련자·청년층까지 채용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 채용 숫자보다 입사·교육·유지 과정을 거쳐 실제 생산라인에 남는 인력을 관리하고, 현지 직원이 설비 운영과 문제 해결을 넘겨받도록 해야 한다.
- 중소기업은 현지 전환 시점, 중견기업은 채용 수율, 대기업은 협력사의 인력 리스크까지 관리해야 미국 공장의 생산 정상화 속도를 높일 수 있다.
한국 기업은 미국에 공장을 짓는 법은 배웠다. 이제 문제는 그 공장을 누가, 얼마나 빨리 정상 가동시키느냐다.
조지아를 비롯한 미국 남동부에 전기차·배터리·태양광·반도체 투자가 몰리면서 기업들이 같은 숙련 인력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세제 혜택과 부지, 전력만 보고 공장을 정하던 시대가 끝나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공장 입지를 결정할 때는 실업률이 아니라 경제활동참가율과 실제 통근권, 기술대학의 졸업생 수까지 봐야 한다. 300명이 필요하다고 300명을 뽑아서도 안 된다. 채용·교육·이탈을 거쳐 실제 생산라인에 몇 명이 남는지를 계산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경쟁이 ‘건설’에서 ‘운영’으로 넘어가고 있다. 새로운 KPI는 투자액이 아니라 램프업 속도다.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미국 근로자에게 정말 첫 번째 선택일까요?박선근 한미우호협회장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에서 열린 '한미 인력전략 서밋(U.S.–Korea Workforce Strategy Summit)’에서 박선근 한미우호협회 회장이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은 단순한 채용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공장을 지은 뒤 실제로 정상 가동까지 얼마나 빨리 갈 수 있느냐는 ‘램프업 속도’의 문제다.
박 회장은 애틀랜타에서 청소용역회사 GBM과 부동산 투자회사 GSI를 설립해 성장시킨 한인 기업인으로, 조지아주 항만청 부이사장 등을 지냈다. 기아자동차 조지아 공장 유치와 SK배터리 투자 과정에서도 자문 역할을 맡았다.
그는 미국 제조업 현장의 임금 수준을 예로 들며 한국 기업의 채용 경쟁력을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일자리는 시간당 20~30달러 수준인 반면 배관공 등 숙련 기술직은 시간당 45달러 수준까지 받을 수 있다며 “한국 기업에서 일하는 것이 일반 미국 근로자의 최우선 선택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박 회장은 해법으로 기존 채용시장 밖의 인력을 지목했다. 고교를 마치지 못했거나 저임금 일자리를 옮겨 다니는 청년층을 제조업으로 끌어들이고, 필요하면 조지아 밖 앨라배마·미시시피·아칸소 등으로 채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업률 보지 마라”… 美 입지 선정 때 봐야 할 3가지
이날 서밋에서는 임금뿐 아니라 통근권, 채용 대상, 훈련 방식까지 미국 현지 인력 전략을 다시 봐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공장 입지는 땅과 세금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앞으로 10년 동안 이 지역이 필요한 사람을 계속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새로운 입지 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에밀리 브린슨 워크소스 조지아(WorkSource Georgia) 디렉터는 "공장 입지를 검토할 때 실업률만으로 노동시장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핵심 지표는 경제활동참가율, 실제 통근 패턴, 향후 인력 공급 등 세 가지다. 브린슨 디렉터는 “실업률이 낮다는 말은 무시하라. 경제활동참가율을 보라”고 했다. 구직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인구가 많으면 실업률이 낮더라도 실제 채용 가능한 인력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도상의 2시간과 노동자의 2시간은 다르다. 자동차 의존도가 높은 조지아 제조업 지역에서는 거리보다 도로 사정, 교대시간, 실제 거주지역이 통근 가능성을 결정한다. 지도 위 반경만으로 노동력을 계산하면 ‘있는 사람’을 실제로는 채용하지 못하는 오류가 생길 수 있다.
인력 공급도 입지 선정의 주요 변수다. 브린슨 디렉터는 지역 대학과 기술대학의 전공·직무교육, 향후 10년간 노동인구 전망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3~5년 뒤 해당 지역에서 어떤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어서다.
“300명 뽑으면 300명 남을까”… 채용보다 어려운 인력 유지
제조업 채용도 이제 ‘퍼널’로 봐야 한다. 지원자 → 오퍼 → 입사 → 교육 수료 → 90일 유지 → 실제 생산 투입까지 단계마다 사람이 빠진다.
제이슨 캠벨 MAU 워크포스 솔루션 디렉터는 증산기에 필요한 인원과 실제 생산라인에 남는 인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관리해야 할 숫자는 채용 인원이 아니라 ‘채용 수율(Workforce Yield)’이다.
300명이 필요하다면 300명을 채용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300명이 실제 생산라인에 남기까지 몇 명을 모집해야 하는지를 역산해야 한다. 입사 제안을 거절하거나 교육 과정에서 이탈하고, 입사 후 수개월 안에 회사를 떠나는 인원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근무환경을 사전에 정확히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근무조건을 숨긴 채 채용 숫자만 맞추면 조기 이탈률이 올라가고, 결국 채용 비용과 램프업 시간이 동시에 늘어난다.
정규직만 찾지 마라… 미국 제조업의 ‘숨은 노동력’
미국 제조업 인력전쟁에서는 ‘누가 이미 일하고 있는가’보다 ‘누가 아직 노동시장에 충분히 들어오지 않았는가’를 찾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웨스 우드 베리어블 부사장은 "증산기에 정규직 채용만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경우 필요한 시점에 계약 인력을 투입하는 방식도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베리어블은 제조현장에 필요한 인력을 수요에 맞춰 연결한다. 우드 부사장은 한 디젤엔진 생산라인 사례를 들며 증산기에는 전체 인력의 10~15%를 이런 유연 인력으로 운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방식은 기존 정규직 채용시장에 들어오지 않던 인력도 끌어들인다. 육아 등으로 주 40시간 근무가 어려운 여성이나 은퇴한 숙련 기술자가 대표적이다.
세션에서는 제조업 경력자 외의 인력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고교를 마치지 못했거나 저임금 일자리를 옮겨 다니는 청년층도 교육을 거치면 제조업 인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스콧 맥머레이 조지아 퀵스타트 부커미셔너는 이들이 “조지아에서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는 인력”이라고 말했다. 고교 졸업장이 없는 성인도 성인교육을 거쳐 GED나 졸업장을 취득한 뒤 기술대학에서 직무교육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엔지니어는 언제 빠질 수 있나… 현지화 속도가 새 KPI
서밋에서는 최근 이민·비자 규정과 집행 환경 변화가 기업의 인력 운용에 미치는 영향도 다뤄졌다.
미국 공장의 진짜 현지화는 미국인을 몇 명 채용했느냐가 아니다. 한국 엔지니어가 없어도 설비를 돌리고, 고장을 잡고, 품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가 핵심 경쟁력이다.
브렌다 J. 올리버 잭슨 루이스 변호사는 "국제학생과 외국인 인력을 둘러싼 제도가 계속 바뀌고 있어 과거 경험만으로 인력을 운용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채용이나 파견을 결정할 때 실제 근무 가능 시점과 관련 절차를 생산 일정과 함께 확인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 제조업체는 미국 공장 초기 가동 과정에서 본사와 협력업체 엔지니어를 투입해 설비 설치와 시운전, 초기 불량 대응을 맡기는 경우가 많다. 다만 생산거점이 늘수록 파견 인력 관리와 컴플라이언스 부담도 커질 수 있다.
스콧 스나이더 코리아경제연구소(KEI) 회장은 "대기업과 함께 미국에 진출한 중소 협력업체가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산 일정은 맞춰야 하지만 대기업과 같은 수준의 법무·인사 지원을 갖추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트레버 윌리엄스 글로벌애틀랜타 편집장은 "설비 시운전을 맡은 한국 인력과 이후 운영을 넘겨받는 미국 현지 직원 사이에서 소통 단절이 발생하는 사례를 자주 봤다"고 말했다. 장비 운용법과 장애 대응 노하우, 주요 판단 권한이 현지 조직으로 충분히 넘어가지 않으면 공장 가동 이후에도 한국 엔지니어 의존이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공장 가동 후 몇 개월 만에 운영 지식과 문제 해결 권한을 현지 조직으로 넘길 수 있는지, 즉 ‘현지화 속도(Localization Velocity)’가 중요한 운영지표가 된다.
더밀크의 시각: 인력은 ‘램프업 속도’를 결정하는 변수
한국 기업이 미국 공장을 운영할 때 인력 문제는 채용 인원보다 생산 정상화 속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된다. 공장이 완공돼도 숙련 인력이 부족하면 가동률을 높이기 어렵다. 현장 대응이 늦거나 품질 문제가 반복되면 한국 본사와 파견 인력에 대한 의존도도 높아질 수 있다.
이 관점에서는 기업 규모별로 봐야 할 사안도 달라진다.
중소기업은 미국 현지 전환 시점을 먼저 정해야 한다. 미국 진출 초기에는 본사 인력이 필요하지만, 언제까지 누구에게 어떤 업무를 넘길지 정하지 않으면 파견이 상시화된다.
중견기업의 경우 '채용 수율' 관리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원→입사→교육→90일 유지→생산 투입까지의 전환율을 데이터로 관리해야 다음 증설의 인력 수요를 예측할 수 있다.
대기업은 협력사의 인력 리스크를 공급망 리스크로 봐야 한다. 지원→입사→교육→90일 유지→생산 투입까지의 전환율을 데이터로 관리해야 다음 증설의 인력 수요를 예측할 수 있다.
지난해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임직원들의 본국 추방 사례도 정책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초기에 이런 이슈를 인지하고 준비하지 못한 탓도 있다.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는 이제 두 번째 단계에 들어갔다. 첫 번째 경쟁은 누가 더 좋은 부지와 세제 혜택을 확보하고 공장을 빨리 짓느냐였다. 두 번째 경쟁은 그 공장을 얼마나 빨리 현지 인력으로 정상 가동시키느냐다.
공장을 짓는 것은 자본의 문제다. 공장을 계속 돌리는 것은 사람과 조직의 문제다. 미국 제조업 투자의 다음 승부는 ‘램프업 속도’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