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라는 불을 훔친 남자, 일리야 수츠케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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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익 2026.01.17 15:15 PDT
‘AI’라는 불을 훔친 남자, 일리야 수츠케버
(출처 : Gemini)

[CEO포커스] 일리야 수츠케버
오픈AI 공동창업자 출신... 47조원 가치 기업 설립하기까지 ‘풀스토리’
경계인의 탄생… 토론토 대학과의 운명적 만남
‘인류 전체를 위한 AI’ 비전을 품다… AGI를 느껴라!
균열, 5일간의 쿠데타… 오픈AI를 떠나다
‘마지막 방주’ SSI… “스케일링의 시대에서 연구의 시대로”

2012년 10월 13일, 이탈리아 피렌체 컴퓨터 비전 학회(ECCV) 워크숍.

‘AI의 겨울’이라 부르는 정체기에 갇혀 있던 AI 연구자들 사이에는 긴장감과 회의감이 팽배해 있었다. 

당시 학계를 지배하던 주류 이론은 인간이 직접 알고리즘의 규칙을 설계하고 특징을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계가 스스로 학습한다는 ‘신경망(Neural Networks)’ 이론은 1980년대 이후 ‘작동하지 않는 몽상’으로 치부되며 비주류로 취급됐다.

한데 이날 발표된 ‘이미지넷(ImageNet)’ 대회 결과가 판도를 단 하루 만에 뒤집었다. 신경망을 활용한 캐나다 토론토 대학 ‘슈퍼비전(SuperVision)’팀이 제출한 결과가 전 세계 석학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 것이다. 이 팀이 설계한 합성곱 신경망(CNN) 모델 알렉스넷이 기록한 오류율은 15.3%. 당시 2위를 차지한 일본 연구팀의 오류율(26.2%)을 무려 10.9%포인트 앞서는 압도적인 격차였다. 

기적 같은 승리의 배후에는 세 명의 남자가 있었다. 202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제프리 힌튼 토론토대 교수와 그의 제자 알렉스 크리제브스키, 일리야 수츠케버(Ilya Sutskever)였다. 당시 20대 중반의 대학원생이었던 수츠케버는 두 개의 엔비디아 GPU를 연결해 밤낮없이 모델을 훈련시켰다. 데이터만 충분하다면 기계가 인간의 이미지 인식 능력을 능가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그것은 ‘딥러닝(Deep Learning)’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일리야 수츠케버라는 천재가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추론 AI 시대를 연 결정적 순간들, 그리고 미래

2013년 알렉스넷 팀. (왼쪽부터) 일리야 수츠케버, 제프리 힌튼, 알렉스 크리제브스키. (출처 : Acquired, LinkedIn)

경계인의 탄생… 토론토 대학과의 운명적 만남

일리야 수츠케버는 1986년 소비에트 연방(소련) 고리키(Gorky, 현 니즈니노브고로드)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냉전의 끝자락이었으며 제국이 내부로부터 무너져내리던 혼돈의 시기였다. 그의 가족은 그가 5세가 되던 1991년,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 이스라엘로 이주를 감행했다.

다문화적 성장 배경은 기술과 그 영향에 대한 그의 글로벌한 시각 형성에 기여했다. 안정된 시스템을 신뢰하기보다는 본질적인 원리를 탐구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향을 갖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의 성장기 동안 그는 언어적, 문화적 장벽 속에서도 남다른 지적 호기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어릴 때부터 AI에 관심이 많았으며 ‘의식(consciousness)’이라는 주제에 강한 동기를 느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특히 수츠케버의 천재성은 그를 정규 교육 과정의 틀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그는 일반 고등학교 교육 과정을 건너뛰고, 2000년부터 2002년까지 14~16세의 나이에 이스라엘 오픈 대학(Open University of Israel)에서 대학 과정을 마쳤다. 이스라엘 오픈 대학은 입학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지만, 졸업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원격 교육 중심의 대학이다. 어린 수츠케버는 이곳에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컴퓨터 과학과 수학의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다.

16세가 되던 해 수츠케버의 가족은 다시 한번 이민을 떠나 캐나다에 정착한다. 잦은 이주는 그를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 이방인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어떤 환경에서도 본질을 꿰뚫어 보는 관찰자의 시선을 갖게 해줬다. 

토론토 대학에 입학한 그는 수학 학사 과정에 이어 컴퓨터 공학 석사 및 박사 과정에 진입하며 운명적인 스승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AI 대부’ 제프리 힌튼 교수였다.

당시 힌튼 교수의 연구실은 주류 학계에서 벗어난 이단아들의 집합소였다. 하지만 수츠케버는 힌튼 교수의 직관, 즉 ‘뇌의 뉴런 구조를 모방한 신경망이 언젠가는 정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지지했다. 힌튼 교수는 수츠케버에 대해 “그는 남들이 몇 주 걸릴 코딩 작업을 단 하루 만에 끝내버리곤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늘 올바른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었다”라고 회고했다.

토론토 대학에서 수츠케버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는 ‘순환 신경망(Recurrent Neural Networks, RNN)의 훈련’이었다. 당시에는 훈련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RNN을 다룬 이 연구는 훗날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이 탄생하는 데 있어 시퀀스 데이터를 처리하는 이론적 토대가 된다.

👉천재 AI 학자는 왜 26억원 구글 연봉 거절하고 오픈AI로 갔을까?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왼쪽)와 일리야 수츠케버 오픈AI 전 수석 과학자(오른쪽)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출처 : Nvidia)

‘인류 전체를 위한 AI’ 비전을 품다… AGI를 느껴라!

알렉스넷의 성공 직후 단행된 구글의 ‘DNN리서치’ 인수는 수츠케버에게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 구글은 힌튼 교수가 설립한 DNN리서치를 인수함으로써 힌튼, 수츠케버, 크리제브스키 세 명의 천재를 영입하는 인재 인수(Acqui-hire) 전략을 폈다. 

수츠케버는 자연스럽게 구글의 핵심 AI 연구 조직인 구글 브레인에 합류할 수 있었고, 구글 번역 성능을 획개선하는데 기여했다. 중요한 건 이 과정에서 그가 데이터와 컴퓨팅 파워를 늘리면 모델의 지능이 비례해서 증가한다는 ‘스케일링 법칙(Scaling Laws)’을 체득했다는 점이다. 

이런 깨달음은 그가 구글을 떠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데 영향을 줬다.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 여름 발생했다. 당시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의 대표였던 샘 올트먼이 실리콘밸리 로즈우드 샌드힐 호텔에서 프라이빗 모임을 개최한 것이다. 

일론 머스크, 그렉 브록만, 일리야 수츠케버가 참석한 이 모임에서는 ‘인류 전체를 위한 안전하고 개방된 AGI(범용 인공지능)를 만들어야 한다’는 비전이 공유됐고, 이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오픈AI가 설립됐다. 인류를 위한 AI라는 비전에 깊이 매료된 수츠케버는 공동 창업자이자 수석 과학자(Chief Scientist)로서 오픈AI에 합류하게 된다. 

오픈AI 초기 수츠케버는 종교적 지도자를 연상시켰다는게 그와 함께 일한 직원들의 전언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AGI가 먼 미래의 공상과학이 아니라 곧 닥쳐올 현실임을 끊임없이 주지시켰다. 회의 시간이나 회사 파티에서 “AGI를 느껴라!(Feel the AGI!)”라는 구호를 외치도록 유도했고, 내부 커뮤니케이션 도구인 슬랙 메신저에서 ‘Feel the AGI’ 이모티콘을 만들어 사용할 정도였다.

수츠케버에게 AGI는 데이터 센터 서버들 사이에서 숨 쉬는, 곧 깨어날 거대한 존재와 다름 없었다. 그러나 모델이 기하급수적으로 똑똑해질수록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근원적인 공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초지능 AI란 무엇인가? ... 24시간 학습하고 자가발전, 끝은 어디?

(오른쪽부터)미라 무라티 오픈AI 전 CTO, 샘 알트만 CEO, 일리야 수츠케버 전 수석과학자, 그렉 브록만 사장, 자쿱 파초츠키 신임 수석과학자 (출처 : 일리야 수츠케버 X)

균열, 5일간의 쿠데타… 오픈AI를 떠나다

2023년 챗GPT의 폭발적인 성공으로 오픈AI는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이 됐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심각한 이념적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수츠케버는 AI의 발전 속도가 안전 조치를 마련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에 위기감을 느꼈다. 

그는 인간보다 똑똑한 초지능을 통제하는 기술, 즉 ‘초정렬(Superalignment)’ 연구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2023년 7월 얀 라이케와 함께 슈퍼얼라인먼트 팀을 신설하고, 오픈AI가 보유한 전체 컴퓨팅 자원의 20%를 이 연구에 할당받기로 약속받았다.

하지만 오픈AI가 상업화와 신제품 출시에 치중하면서 이 약속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수츠케버는 샘 올트먼이 안전보다 속도와 상업적 성공을 우선시하며 이사회에 정보를 불투명하게 제공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 갈등이 폭발했다. 2023년 11월 샘 올트먼 CEO 축출 사태가 터졌다.

수츠케버와 이사회(헬렌 토너, 타샤 맥컬리, 아담 디안젤로)는 이것이 인류를 위한 안전장치(Kill switch)를 작동시킨 것이라 믿었다. 영리적 욕심이 안전을 위협할 때 비영리 이사회가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오픈AI의 독특한 지배구조가 작동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수츠케버의 행동은 그의 예상과 달리 거대한 역풍으로 돌아왔다. 오픈AI에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 및 벤처투자자들이 격분했고 700명이 넘는 직원들은 “샘이 돌아오지 않으면 회사를 떠나겠다”며 연판장을 돌렸다. 수츠케버는 한 순간에 잘나가는 회사를 망가뜨린 장본인이 돼 버렸다. 

결국 며칠 뒤 수츠케버는 소셜미디어 X를 통해 “나는 이사회의 행동에 참여한 것을 깊이 후회한다. 결코 오픈AI를 해칠 의도가 없었다”며 백기를 들었다. 올트먼은 5일 만에 CEO로 화려하게 복귀했고, 수츠케버는 이사회에서 물러났다. 표면적으로는 갈등이 봉합된 듯 보였지만, 수츠케버는 더 이상 예전의 수석 과학자로 돌아갈 수 없었다.

👉'영혼의 컴백' 오픈AI 떠난 수츠케버, SSI 설립... 슈퍼인텔리전스 가까워

‘마지막 방주’ SSI… “스케일링의 시대에서 연구의 시대로”

2024년 5월 수츠케버는 결국 오픈AI를 떠났고, 한 달 후 새로운 회사 ‘SSI(Safe Superintelligence Inc.)’의 설립을 발표했다. 

‘안전한 초지능’이라는 이름에서부터 그의 확고한 철학이 확인된다. SSI는 실리콘밸리의 기존 성공 방정식, ‘빠르게 실행하고 파괴하라’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단 하나의 목표인 안전한 초지능을 추구한다. 챗봇이나 이미지 생성기 같은 상용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 없다. 

아이러니한 건 실리콘밸리 자본이 이 ‘제품 없는 회사’에 열광했다는 점이다. 안드레센 호로위츠(a16z),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DST 글로벌 등 대형 투자사들이 참여해 10억달러(약 1조4700억원)를 투자했다. 회사 가치는 설립 직후 50억달러(약 7조3000억원)로 평가받았다. 현재 기업 가치는 320억달러(약 47조원). 이는 수츠케버라는 인물에 대한 무한한 신뢰이자, 역설적으로 AI 안전 문제가 그만큼 시급하고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임을 시장이 인정한 결과로 풀이된다.

흥미로운 건 최근 그가 오랜 기간 신봉했던 스케일링 법칙을 버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인 ‘연구의 시대(Age of Research)’를 선언했다는 점이다. 스케일링 법칙이 ‘데이터 고갈’과 ‘비용 급증’이라는 근본적인 한계에 도달했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그는 “초지능은 완성된 것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라며 “5년에서 20년 사이 초지능이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 수츠케버가 새로운 알고리즘, 창의적 방법론으로 또 한 번 거대한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을지 업계의 귀추가 주목된다.

일리야 수츠케버의 삶은 그리스 신화에서 불을 훔쳐 인류에게 전해 준 프로메테우스를 연상시킨다. 그는 2012년 딥러닝의 시대를 열었고, 오픈AI를 통해 그 불을 거대한 횃불(GPT)로 키워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만든 불길을 통제하기 위해, 혹은 그 불길이 인류를 집어삼키기 전 안전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SSI는 일리야 수츠케버의 마지막 AI 여정이자 인류를 위한 최후의 방주(Ark) 일지도 모른다.

👉박사급 AI라는데 왜 실수를 할까?... 비밀은 ‘감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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